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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jpg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아.. 늦었다. 늦었어..”
 
지하철 승강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띠링..띠링..“
 
지하철이 방금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번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간신히 지하철에 올라탔다.
 
“휴... 다행이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고 갈 수 있겠다..”
 
그런데..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다시 그 지하철에서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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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날 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한 집에서 살았다.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아침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작은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 할아버지, 백원만..”
“ 할머니, 백원만..”
 
그리고 내 손바닥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주신 백원짜리가 채워지면 그제야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 나가곤 했다. 마치 아침이면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받은것 처럼 말이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 잠깐 있다 왔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할머니께서는 건강을 위해 매일 산보를 가셨는데, 하루는 나만한 꼬마를 보면서 내가 너무 생각이 나셨다고 한다. 그래서 꼬마 옆에 가서 이름을 물어 보시면서 백원짜리 동전을 작은 손에 쥐어 주셨다. 그랬더니 그 꼬마가 너무 좋아 하면서 막 뛰어 갔다고 말이다. 할머니는 그 아이를 보면서 내 생각이 나셨던 모양이다.
 
그 다음날부터 할머니의 주머니는 무거워졌다. 산에 가실때마다 나와 같은 꼬마들을 만나면 손에 쥐어줄 백원짜리를 주머니에 두둑히 담고 가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할머니께는 날마다의 기쁨이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보고싶어서, 할머니가 업어서 키운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꼬마가 눈에 아른거려서 말이다.
 
우리 할머니는 그 꼬마가 어느덧 장성하여 성인이 될때까지 지켜보시다가 소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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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승강장 계단을 뛰어 내려와서 간신히 지하철을 탄 나는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다시 내리고 말았다. 그냥 그렇게 갈 수가 없었다. 저기 승강장 계단 쪽에 앉아 있는 한 사람 때문에 말이다.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껌을 팔고 있는 할머니..
하얀 털모자를 쓰고 껌을 팔고 있는 그 할머니..
그냥 지나쳐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힘없고 작은 목소리로 껌을 좀 사 달라고 말하고 있는 저 할머니..
 
“ 아.. 저 할머니.. “
 
그 짧은 순간에 왜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을까. 승강장 계단을 허겁지걱 뛰어 내려 오면서 그 할머니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할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 만원짜리 한장을 손에 쥐어 드렸다.
 
“ 할머니 추우시죠? 이거 할머니 따뜻한 식사하세요. ”
 
그리고 일어나서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 할머니가 힘겨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 총각, 이거 가져가... ”
 
나는 몸을 돌려 다시 그 할머니를 바라 보았다. 그런데 그분은 나에게 너무나 고마운 표정으로 자신이 가지고 온 껌을 모두 손에 들고는 나에게 가지고 가라며 내밀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 껌은 꾀나 많은 양이었다. 만원 보다 훨씬 이상의 양이었다. 아니.. 내가 드린 돈은 고작 만원짜리 한 장인데, 저걸 다 주시려 하시다니.. 휴..
 
“ 괜찮아요. 할머니.. 이거 할머니 다른 사람에게 파세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등을 돌려서 그냥 지하철 승강장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 할머니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려 보았는데 그분은 계속 나를 쳐다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자신이 가지고 온 껌을 모두 손에 들고 말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할머니는 또다시 그 껌들을 나에게 가지고 가라는 듯이 몸짓을 하셨다. 나는 그냥 몸짓으로 거절하며 인사를 드리고 지하철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지하철에 올라서 지갑을 열어 보았다. 내 지갑 속에는 또 다른 만원짜리 지폐들이 여러 장 들어 있었다. 나는 그냥 그 중에서 하나를 드렸을 뿐인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것이 없으면 밥을 굶어야 할지도 모를 것들을 다 주려고 하시던 그 할머니... 아.. 내 눈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평생에 정말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는데, 번번한 선물 한번 해 드린적도 없는데, 늘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또 한분이 생각이 났다.
평생에 그분께 드린 것이 정말 하나도 없는 분.. 나는 늘 그 은혜를 잊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기만 했는데.. 늘 내 욕심대로 살아가기만 했는데.. 그것을 다 아시면서도 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주신 그분..
 
우리 주님이 생각 났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을 “은혜”라고 부르는가 보다.
 
은혜..

Who's John

profile

그는 "글쓰는 크리스천 공학자"이다. 지난 십수년간 광학측정 분야에서 공학자의 길을 걷고 있고, 2004년부터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As Mission"이라는 문구를 마음에 품고 선교적 삶을 힘써 왔다. 공학박사와 경영학석사를 공부했고, 인텔에서 디자인 엔지니어로 4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샌디에고 주립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고, The Center for Business as Mission에서 스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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