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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토트 목사님은 “현대사회의 이슈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에서 일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셨다. “사회 문제의 핵심이 인간의 삶을 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그 열쇠, 곧 인간의 일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일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취를 이루고, 실로 어떤 의미에서 ‘더욱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복잡해지고 경쟁화된 사회 속에서 비익빈 부익부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우리의 주변에는 가난과 억압으로 시달리는 수많은 이웃들이 있다. 또한, 우리들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때에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하루에 이만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 현실이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원조(구제)와 교육이며,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이 자립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와 문화이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를 먹이시고 병든자를 고치시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가난한 이웃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삶의 터전(일자리)을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 여기서 “가난한 이웃”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자들과 사회적으로 힘없는 자들을 의미한다. 게으름이나 낭비 등 자신의 선택적 행위로 가난해진 사람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들어가는 말


비지니스 선교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두가지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는 Business for Mission이다. 이는 비자문제 해결, 경제적인 자립 등의 목적으로 선교지에서 비지니스를 선교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둘째는 Business as Mission이다. 2004년 로쟌 선교대회에서 논의된 새로운 선교 접근방법으로서 총체적인 선교의 관점에서 비지니스를 선교의 도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비지니스 자체를 선교의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Business as Mission의 중요한 목적중에 하나가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한 개인을, 혹은 한 지역을, 나아가 한 나라을 축복하며 총체적인 회복을 꿈꾸는 것이다. 여기서 “일자리”라 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회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개인이 속한 사회에 적합한 일자리(혹은 일거리, 일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보일러를 회사라는 일자리가 있다면, 아프리카에서 장작불을 피워주는 일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역은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접근할 수가 없다. 가난한 이웃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속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이윤추구를 어느정도 희생하고 자유경쟁 속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역은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사랑’의 목적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 그 사랑의 동기 위에 적합한 아이디어, 전략, 그리고 자원이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먼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호소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웃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복음 전파와 총체적 선교의 관점에서 왜 중요한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문1. 하나님 사랑 & 이웃사랑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여쭤 보았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느니라.” (막 12:28-3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요일 5:3), 그 계명은 너무나 분명하고 단순하게 우리들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을 위한 길이며,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통해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9장에서는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영생을 받을 수 있냐고 질문한 부자청년에게 이웃사랑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하신 후에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22장과 마가복음 12장에서는 가장큰 율법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고, 갈라디아서 5장 14절과 로마서 13장 8-10절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율법의 완성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정신은 십자가의 형상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십자가의 수직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하고 수평축은 이웃과의 관계를 상징한다. 이 두가지 축이 적절한 길이로 함께 있을때에 “십자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랑 = 필요에 관심을 가지는 것

사랑한다면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배고픔과 절망 속에 있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지를 가져가는 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기 의(self rightouseness) 혹은 종교적 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배고픈 자에게 먼저는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자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빵을 주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알려주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교회 안으로 침투한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사상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 정신과 이웃에 대한 책임 의식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점점 사라져 왔다. 나의 사정과 나의 상처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늘어나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눈물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성경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 예수는 좋은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싫다.” 은혜, 사랑, 기도 등의 소리는 들려오지만 정작 따뜻한 손길과 희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볼때 사회는 더욱 실망을 하고 하나님과 복음에 대해 오해를 하게 된다.


우리는 아래의 시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 노숙자 여인이 도움을 청했을때 어떤 그리스도인은 그녀를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후에 그 여인은 다음의 시를 썼다.


나는 배고팠어요. 그런데 당신은 나의 굶주림에 대해 논하기 위해 자선 단체를 결성했어요.

나는 벌거벗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마음속으로 나의 외모가 단정한지 생각했어요.

나는 아팠어요. 그런데 당신은 무릎을 꿇고 자신의 건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나는 집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내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영적 쉼터에 대해 설교했어요.

나는 외로웠어요. 그런데 당신은 나를 위해 기도한다며 나를 혼자 버려두고 갔어요.

당신은 너무나 거룩하고 하나님께 아주 가까이 있는 듯 보이네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주 배고프고 외롭고 춥답니다. [1]


본문 2. 일의 중요성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원조(구제)이다. 힘이 없어 쓰러져 있는 누군가에게 걸으라고 하기 전에 먼저는 힘을 낼수 있도록 먹을것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일자리이다. 어느정도 힘을 얻은 사람을 부축하며 걷도록 할수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 옆에서 부축만 해 줄수는 없다. 그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가르처 주고 훈련시켜 주지 않으면 그는 다시 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일자리는 가난한 이웃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후에 자립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 준다. 그렇다면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단순히 경제적 자립을 위한 것인가?


Work as Worship

지금은 기독교 안에서 인식이 많이 변했지만 몇년전까지만 해도 “일하는 것”과 “안식하는 것” 사이에는 세속과 거룩이라는 경계가 있었다. 세상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사역에 참야하는 것은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전 것이다. 그렇다면 ‘일’은 하나님께서 성스럽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먼저 일이 단순한 노동 이상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일은 인간의 형상 속에 내제된 고유한 모습이다. 천치창조의기사 속에 하나님은 최조의 일하시는 분(worker)으로 등장한다 [2]. 또한, 일을 마치신 후에 성취하신 것을 보시면서 흡족해 하셨고, 그 후에 안식하셨다. 그리고 창조하신 땅(에덴)을 갈게 할 사람(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땅을 경작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 1:31-2:2)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Abad)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4-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Abad) 지키게 하시고 (창 2:15)



여기서 2장 5절에 등장하는 “땅을 갈다”와 “경작하다”에 사용된 히브리 단어 ‘아바드(Abad)’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예배의 기원이 되는 다섯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엎드려 절하다”(신26:10)는 의미의 히브리어 ‘샤카(shachah)’, “존경의 표시로 엎드린다”(마 14:33)는 의미의 헬라어 ‘프로스퀴네오(proskyneo)’,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라는 의미의 헬라어 ‘라트레이아(latreia)’,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한다”(행 13:2)는 의미의 헬라어 ‘레이투르기아(leitourgia)’, 그리고 “섬기다, 일하다”(창2:5,15)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바드(Abad)’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만드신 땅(에덴)에 일할 사람(아담)을 세우셔서 그가 땅에서 일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아담의 일은 그 자체가 예배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일터,직장)을 주셨고, 우리를 일터로 부르셨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일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일할때에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일의 목적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도구이며, 인간은 일을 통해서 창조의 목적에 맞게 실로 인간답게 살게 된다. 존스토트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일의 목적에 대해서 다음의 세가지로 설명하셨다.


(1) 일하는 사람의 성취 그리고 안식

일하면서 경험하는 성취가 성경적인 일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약간 의아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존스토트 목사님은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셨다.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우리의 잠재능력은 우리가 지닌 하나님의 형상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 창조주는 우리에게 재능을 주셨고, 우리가 그 재능을 사용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우리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기를 바라신다. … 일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취를 이루고, 실로 어떤 의미에서 더욱 인간이 된다.” [1]


또한 일하는 자들에게 허락되는 안식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셨다. “하지만 일이 실제로 우리 인간됨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절정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땅을 정복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제정한 것이디 때문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보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을 중단할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1]


하나님은 육일동안 물질세계에서 일(work)을 하시고 심히 좋아하셨고, 마지막 칠일째 날에 안식하셨다. 우리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의미중에 하나는 인간이 예배를 위해 일을 멈추는 것이다. 그럴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가까이 간다. 하지만 일이 없다면 참된 안식도 존재할 수 없다. 특히, 현대의 바쁜 사회 속에서 일은 개개인에게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더이상 성취와 만족을 가져다 주기 보다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생계 유지의 수단의 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통한 성취의 기쁨이나 만족, 그리고 참된 안식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2) 공동체의 유익

아담은 가족을 위해서 에덴 동산을 경작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가난한 자들, 이방인들, 고아와 과부들에게 수확물을 나누었다. 신약에서도 도둑은 더이상 도둑질 하지 않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기위해 자기 손으로 일해야 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일을 공동체-작게는 가족, 크게는 사회 구성원-를 위한 것으로 간주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때에 인간이 보람과 긍지를 가지는 것을 보면 일의 본질적인 모습속에 “공동체 정신”이 숨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3) 하나님께 영광

일의 가장 고귀한 기능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맡기시며 “경작하라”고 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역자로 부르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구가 저절로 생산력을 지니도록 창조하지 않으시고, 터전을 만드신 위에 인간의 노동이 더해져서 완성되도록 하셨다. 이것이 바로 문화(Culture)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Nature) 위에서 인간의 경작(Cultivation)이 더해질때 온전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러한 창조의 섭리에 순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일할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드러나며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위의 세가지 목적을 존스토트 목사님은 이렇게 요약하셨다. “일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에너지(육체적 혹은 정신적 혹은 둘다)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에게는 성취를, 공동체에는 유익을, 하나님꼐는 영광을 가져온다. … 성취와 섬김과 예배(혹은 하나님의 목적과의 협력)는 모두 한데 얽혀 있다. 일에 대한 만족은 단순히 좋은 조건, 안전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 자체에서 생겨나며, 특히 포착하기 어려운 ‘의미’에서 나온다. 주로 일을 통해 우리가 공동체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기여한다는 의식으로 이루어진다.” [1]


목사님이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한 수공예품 센터를 방문하셨던 적이 있다. 그곳에는 난민 수용소 출신의 젊은이들이 수공예, 뜨개질, 밀짚 공예 등을 배우고 있었다. 목사님게서 놀라셨던 것은 그들이 옆에 누가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아무런 할일이 없어서 하루하루 의미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날 자신의 일을 찾고 그곳에서 성취하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말이다. 일은 그들에게 존엄성, 의미, 섬김을 통한 자기 가치 의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명하시고, 일을 통해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로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이다.


본문 3. 가난한 이웃에게 일자리를


하나님께서 일을 창조하신 목적에 비추어 볼때 인간이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생계유지의 수단을 넘어 인간성 자체를 유지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부의 불균형의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일의 불균형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효율의 극대화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점점 일거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그렇게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비단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일을 통한 성취와 기쁨을 느껴보지 못한체 일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세계에 허다하다. 그런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필요와 그들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자리가 안정화 될때까지 우리의 삶(재능, 물질, 시간)을 헌신하며 지원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


성격적인 일

정직 , 봉사 정신, 탁월함, 존중, 책임감, 가치, 신용, 성실 등은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실천 덕목일 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비지니스를 보여 주고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말과 향동으로 복음을 제시하는 셈이다 [3]. 그렇다면 성경적인 일터는 어떤 특징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켄엘드레드는 그런 일터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열가지로 요약한다.

  1. 회사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특히, 사업의 정책과 방향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이런 면에서 주식회사는 불특정 다수가 경제원리에 따라 경영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적 목적을 유지하기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2. 생산품과 서비스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부합한다. 단순한 예로 마약밀매나 포르노 산업은 아무리 성경적으로 경영을 해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3. 사업 운영의 목적이 이윤추구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일터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것 자체를 첫째 목적으로 한다.
  4. 양질의 생산품과 서비스로 하나님 나라를 대변하며 주님을 전할 기회를 마련한다. 
  5. 모든 고객을 존중하고 정중하게 대하며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6. 고용원과 사원들 각자가 지닌 능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도록 해둔다.
  7. 비지니스와 연관된 모든 분야들을 사역의 기회로 삼아 늘 기도한다.
  8. 기업이 형성한 문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한다.
  9. 사랑과 공의의 적절한 균형 속에서 은혜를 베푸는 정신으로 경영한다.
  10. 경영자는 비지니스 선교를 돌보고, 고용원들의 복지를 책임지고, 고객과 주주를 섬기는 종이다.

하지만 비지니스 세계는 냉정하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목적으로 비지니스 세계에서 자비를 베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무작정 받아만 준다면 그 비지니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난과 자금난으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비지니스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되 완벽한 비지니스맨이 되어야 한다. 비지니스 세계에서 사랑을 품되 분명한 공의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많은 내용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다음호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비니니스 선교

앞서 언급했듯이 비지니스 선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을수 있다. 또한, 비지니스 선교의 정의와 접근에 대해서는 아직 다양한 관점과 논의가 진행중이다. 여기서는 선교지의 필요를 체워주기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선교사역에만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여러 나라들은 (특히, 미전도 종족) 아직도 심각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커피 한잔의 값 2달러, 그것이면 세계 67억 인구 중 30억명이 하루를 살 수 있고, 10억명이 이틀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돈이 없어서 지금도 3초에 한명씩 굶어 죽고 있는 현실이다. 만일 이 글을 읽는데 10분이 걸렸다면 그동안 어디선가 200여명의 사람들이 먹지 못해서 죽어간 것이다. 그보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그런 빈곤은 되물림되고, 그들은 사람답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지도 못한체 일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선교지에서 구제와 선교사역 그리고 이어서 비지니스를 세워 선교지의 민족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함께 생활하며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 이러한 비지니스 선교는 특징을 켄엘드레드는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3].

  1. 비니니스 선교는 자립형 선교 모델이다.
  2. 비지니스 선교는 어디에서나 필요한 전문 기술과 자본을 제공한다.
  3. 비지니스 선교는 일자리를 창출한다.
  4. 비지니스 선교는 지역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그 나라를 축복한다.
  5. 비지니스 선교는 복음에 문을 닫은 나라들을 여는 열쇠다.
  6. 비지니스 선교는 복음을 말로 드러낸다.
  7. 비지니스 선교는 복음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8. 비지니스 선교는 현지 교회의 자립을 가능하게 한다.
  9. 비지니스 선교는 전통적 선교의 유익한 동역자가 될 수 있다.
  10. 비지니스 선교는 교회에 잠재되어 있는 고급 인력과 자원을 동원한다.


협력과 희생의 필요성

앞서 언급했듯이 가난한 자들은 일반적으로 사회 속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경쟁 속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윤을 내지 못해서 머지 않아 문을 닫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고자 하는 진실된 동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쏟아부을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을 준비해야 한다. 다 내어 주어도 괜찮을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수많은 기도가 쌓여야 하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협력해야 한다. 선교지에 주일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를 세우는 것처럼, 가난한 자들에게 삶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일터(일터교회)를 세우는 마음으로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야 한다. 


한국에 메자민아이팩이라는 박스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새터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 2008년 5월에 파주에 지어진 공장이다. 그리고 설립 3년만에 매출액 30억을 돌파하면서 새터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고, 새터민 정착의 성공모델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 새터민들은 남한의 시장경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김동호 목사님께서는 그들을 보며 7천의 탈북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일이 되면 나라가 망하겠구나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탈북자들을 미리 보내주시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고 연습하고 공부하라고 하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박스공장을 세우셨다고 하신다. 남한에서 남한 사람들과 경쟁여 살아남아 자립할 수 있는 공장 말이다. 


그런데 고용된 새터민들은 남한의 노동자들에 비해 일의 효율성도 떨어지고, 고용관계에 있어서도 초보여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매달 5,6천만원씩 적자를 냈다. 만일 그때 이 공장을 세운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다면 아마 문을 닫았을 것이다. 만일 목적이 이윤추구였다면 이윤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공장을 내버려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일 그때 공장이 안정화되기 까지 섬기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 공장은 안정화 단계로 가기 전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비전을 심어줄 설립자, 초기에 공장을 운영할 경영자, 그리고 비지니스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처리할 인력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때 공장의 적자를 안고도 지속할 수 있는 자금이 없었다면 공장은 힘든 시기를 넘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김동호 목사님의 교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헌금하여 그것을 이렇게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 일에 사용했다. 아마 수십억원에 달하는 돈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자금과 그것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데 동의하는 성도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세상의 투자가들이 이렇게 경쟁력이 없는 기업에 투자를 할까?


그렇다. 가난한 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은 단순한 구제 이상의 큰 희생과 협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에게 보조도구를 사주는 것보다 그가 걸을 수 있을때까지 옆에서 훈련해 주는 것이 더 큰 희생을 요구하듯이 말이다.


맺음말:  하늘에 빚을 지고 이웃에게 갚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희생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받은 사랑과 희생에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나 많은 은혜를 입었다. 그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 것이지만 우리는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은혜의 빚을 누구에게 갚을 것인가? “이웃사랑”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이웃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수 있다. 목회와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지식을 활용하여 누군가를 가르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주어진 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며 직장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삶을 보여줄 수 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웃을 섬기는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교회가 은혜 받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곳이라면 일터는 돌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곳이 될 수 있다.


분명 이것은 큰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겪는 희생은 참으로 고귀하고 가치있다. 그 희생의 땀방울은 하늘에 집을 짓는 재료가 될 것이다. 말이 아니라 희생의 땀방울이 모일 때에 사회는 감동하며 예수 십자가의 희생은 강력한 빛으로 이 세상속에 비춰지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존스토트, 현대사회의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4th ed.: IVP, 2006.

[2] W. M. Mats Tunehag, and Josie Plummer, "Business as Mission," presented at the Forum for World Evangelization Hosted by the Lausanne Committee for World Evangelization, Pattaya, Thiland, 2004.

[3] 켄. 엘드레드, 비지니스 미션: 예수전도단, 2006.

[4] R. Marshall and K. Walker, God at Work: Destiny Image, 2000.

[5] R. Marshall and K. Walker, God @ Work: Developing Ministers in the Marketplace vol. 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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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John

profile

그는 "글쓰는 크리스천 공학자"이다. 지난 십수년간 광학측정 분야에서 공학자의 길을 걷고 있고, 2004년부터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As Mission"이라는 문구를 마음에 품고 선교적 삶을 힘써 왔다. 공학박사와 경영학석사를 공부했고, 인텔에서 디자인 엔지니어로 4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샌디에고 주립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고, The Center for Business as Mission에서 스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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